오늘의 일정은 '아라쿠라야마 센겐 공원'에서 후지산을 바라보며 산책하는 것이었는데, 이렇게 후지산이 안 보이는 날씨에 공원을 찾는 것이 무의미해 보였습니다. 그렇다고 그냥 숙소에만 있기엔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무작정 기차에 몸을 실어보기로 했습니다. 어쩌면 계획에 없는 이런 순간들이야말로 여행의 진짜 묘미가 아닐까 생각하며, 새로운 경험을 찾아 나서기로 했습니다.
기차에 몸을 실고, 겟코지에서의 예상치 못한 만남
가와구치코 역에서 왔다 갔다 하는 일정이라면 패스를 구입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좋겠지만, 우리 일행은 오늘 특별한 일정 없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닐 계획이었기 때문에 패스는 생략하고 스이카로 이동하기로 했습니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시모요시다역에 내려야 했지만, 불현듯 겟코지 역에 내려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획이 없다는 것은 때론 무한한 자유를 의미하기도 하니까요.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그동안 미처 보지 못했던 새로운 풍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겟코지 역 근처에는 후지산이 멋지게 보이는 카페가 있다고 들었지만, 오늘같이 비가 오고 안개가 짙은 날에는 그 멋진 풍경도 하나도 보이지 않더군요. 하지만 날씨에 상관없이 이끌리는 대로 걸어보는 것도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라는 생각에, 특별한 목적 없이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비 내리는 시모요시다 거리, 을씨년스러운 한적함
비 오는 시모요시다 거리에는 인적이 드물었습니다. 사람의 발자국 하나 없이 적막한 거리와 그 주변의 풍경은 어딘가 을씨년스럽기도 했습니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니 빈집도 몇몇 눈에 띄었고, 문 닫힌 오래된 가게들도 있었습니다. 이 지역 역시 일본의 인구 감소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특히 시계 가게들이 많이 보였는데, 과거 이곳이 신혼여행지로 인기가 많던 시절, 기념품으로 시계를 사가던 관광객들이 많았다는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그때는 아마 활기가 넘쳤을 이 거리가 지금은 고요하게 비를 맞으며 과거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후지요시다킨세이켄 후지 찻집
걷다 보니 한 카페에 도착했습니다. 입구에는 "한 사람당 한 개는 주문해야 합니다"라는 푯말이 적혀 있었는데, 아마 단체로 와서 자리만 차지하고 후지산을 구경하던 손님들 때문에 만들어진 규칙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커피를 한 잔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지만, 솔직히 커피 맛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여행 중 만나는 모든 것이 다 좋을 수는 없으니까요. 커피 맛보다는 안개와 구름이 가득한 창밖을 바라보며 그저 조용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비 내리는 창밖 풍경을 1~2시간 동안 바라보다 자리를 떴습니다. 때로는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가장 편안할 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후지산역, 이름만으로도 기대했던 곳
비도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고, 딱히 갈 곳도 없었기에 다음으로 후지산역으로 향했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많은 사람들이 찾을 것 같은 '후지산역'이지만, 실제로는 생각만큼 북적이지 않았습니다. 후지산과 특별한 연관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곳은 후지산 등반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역입니다. 후지산의 이름만으로 기대를 가지고 찾았을 여행객들이 약간은 실망할 법도 한 곳이죠.
그래도 역 옆에 있는 작은 쇼핑몰 덕분에 시간을 보내기엔 좋았습니다. 기념품을 구매할 계획이 있다면 이곳에서 간단한 식사와 함께 해결할 수 있는 점이 매력적이었습니다. 다양한 제품을 팔고 있어서 둘러보는 재미도 있었고, 몇 가지 선물도 구입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 날의 비 때문에 특별히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후지산역을 가볍게 둘러본 후 다시 가와구치코역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호우토우 코사쿠에서의 특별한 한 끼
비를 맞으며 여기저기 걷다 보니 어느새 배가 고파졌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호우토우 코사쿠 가와구치코점'을 찾아가 보기로 했습니다. '호우토우 코사쿠(ほうとう小作)'는 일본 야마나시 현에서 굉장히 유명한 향토 음식점 체인입니다. 야마나시 지역의 전통 요리인 호우토우를 전문으로 하는 이곳은 가와구치코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한 번쯤 들러보는 명소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저도 이곳을 꼭 방문해 보고 싶었기에, 오늘 이곳에서 저녁 식사를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호우토우는 두껍고 넓은 납작한 면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인데, 일반적인 우동 면과는 달리 씹는 맛이 훨씬 풍부하고 독특했습니다. 국물은 미소를 베이스로 한 깊고 진한 맛이었으며, 다양한 신선한 채소들이 듬뿍 들어가 있어 몸에도 좋고,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호우토우 코사쿠의 요리는 주로 철제 냄비에 담겨 나오는데, 덕분에 국물이 오래도록 따뜻하게 유지되어 끝까지 맛있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입맛에는 국물이 조금 짠 편이었고, 한국식 된장의 구수함과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결국 제게는 잘 맞지 않아 거의 남기게 되었지만, 독특한 현지 음식을 경험해 본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곳의 음식은 양이 푸짐하게 나오는 편이라, 작은 식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 그릇을 두 명이서 나누어 먹어도 충분할 정도였습니다. 다만, 일본 된장 특유의 맛에 익숙하지 않다면 덮밥 같은 메뉴를 선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많았고, 도착하자마자 이름을 적어놓고 기다려야 했지만,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특별한 맛집 경험이었습니다.
토요코인 후지카와구치코 오하시에서의 하룻밤
오늘의 숙소는 '토요코인 후지카와구치코 오하시'였습니다. 토요코인은 합리적인 가격과 깔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본의 대표적인 비즈니스 호텔 체인으로, 첫 방문에도 체크인 절차가 간단하고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 마음에 들었습니다. 다만 체크인 시간이 오후 4시(회원은 오후 3시)로 다소 늦은 편이라 일정 조정이 필요했지만, 로비에 있는 셀프 락커 보관함 덕분에 미리 짐을 맡겨두고 다른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토요코인은 셀프 체크인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어 편리한데, 아고다 등 해외 예약 사이트를 통해 예약한 경우 가끔 시스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이럴 때는 직원에게 직접 문의하는 것이 시간 절약에 도움이 됩니다. 그 외에도 호텔에서 가와구치코로 가는 셔틀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예약은 받지 않으며 선착순으로 탑승할 수 있습니다. 줄을 잘 서야만 자리를 얻을 수 있는 만큼, 초반에 라인을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새치기하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니까요. 아마 많은 여행을 경험해 보신 분들이라면 이 말의 의미를 잘 이해하실 겁니다.
결국 이날은 많은 비와 흐린 날씨 때문에 특별한 활동은 많지 않았지만, 오히려 비 덕분에 차분하게 걸으며 그곳의 일상적인 모습들을 볼 수 있었던 하루였습니다. 때로는 여행의 목적지가 아닌 그 여정 자체가 더 기억에 남기도 하니까요. 그렇게 비 내리는 가와구치코에서의 하루를 마무리하며, 내일은 맑은 하늘 아래 후지산의 모습을 기대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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